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2.12 군사반란 (문단 편집) === 계엄사령관 체포 계획 === 절대로 '''그냥 당할 생각이 없었던 전두환과 하나회는 정승화 총장보다 한 발 빨리 움직여서 정승화가 박정희 시해사건 현장에 있던 것을 구실로 정승화를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운다.''' 전두환은 [[10.26 사건]] 당시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와 한 패였다고 주장하면서 정승화 총장을 체포할 구실을 만들었고, 하나회 조직원들과 함께 모여서 [[http://m.news.naver.com/read.nhn?sid1=100&oid=028&aid=0002361911|1주일 만에 12월 12일에 작전을 실행하기로 결의한다.]][* 사실 정승화 총장은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대한민국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 대통령의 저격에 의한 피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기고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니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고 했으며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10.26 사건의 혐의자로 수사 선상에 오르는 빌미를 제공했다.][* 허나 결과적으로 정승화 총장의 혐의는 사실무근이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전두환]] 일당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노재현]] 국방장관의 재가 없이 사전에 무단으로 정 총장의 공관에 쳐들어갔으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최규하 대행과 노재현 국방장관이 정승화 총장의 위에 있음에도 이들을 무시하고 하급자인 전두환이 무단으로 정승화 총장을 강제연행한 것은 명백한 반란이다.] 전두환과 하나회 측은 12·12 사태가 박 대통령 서거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절대 권력자가 된 정승화 총장의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벌어진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두환 본인은 군사반란 혐의로 재판받을 당시 숫자 짝을 좋아해서 12월 12일에 결행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12월 12일이면 그동안 장성 진급심사가 끝나 하나회 요인들의 일정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로 인한 개각 등 정부의 대규모 인사변동이 일어나기 전에 일을 해치우기 위한 의도였다. 유신헌법하에서 박정희가 시행했던 대통령 간접선거에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단독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는 국정 운영과 내각 수립에서 안정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 사건에 앞서 전두환 본인이 직접 발표한 수사결과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승화 총장은 김재규와 한 편이 아니었다. 심지어 정승화 총장이 초기에 김재규를 신속하게 체포할 것을 명령하여 김재규의 [[중앙정보부]]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전두환은 정승화와 김재규가 사전에 공모하였다는 것이 추가 조사결과 드러났다고 우기며 정승화를 '''억지로 체포하기로 한다.'''[* 당시 정승화 총장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 내용은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110600209201005&officeId=00020|이곳을 참조]]. 실제로 [[민주화]] 이후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재심이 이루어졌을 때 결국 정승화는 내란방조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는다.][* 애초에 당시는 최규하 권한대행이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기로 예정된 상황이었고, [[신현확]] 총리 이하의 내각도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정승화 총장이 혐의가 있었다고 한들 굳이 초법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밤중에 총까지 쏴대며''' 기습적으로 그를 연행할 필요성은 전혀 없었다. 정승화 총장은 계엄사령관이기는 했지만 철저히 내각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군인의 신분으로 내각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른 이는 '''[[전두환]] 본인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MTQTsPNWYg, 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hdcZGVm5p4, width=100%)]}}} || [[월간조선]] 1995년 9월호 부록으로 제공된 녹음 테이프 자료. 다만 육성과 자막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042|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이 훗날 작성한 수기 전재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